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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SEONG

RYU

지금, 여기 (2023.07.25)

 

"그림을 왜 그리는가?" 라는 질문은 나에게 "왜 태어나서 살아가나?"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자연스럽게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접하고 되었고 그림을 그린다. 처음부터 특별한 동기나 목적이 있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던져져 오늘을 살아가듯이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있었다. 단순히 그것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의미가 되었다. 어떠한 설명과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떠한 말들도 늘 나에게는 변명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보고 그리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위에는더 이상의 이유나 해석이 필요하지 않았다. 문득 나의 회화가 누군가가 관광지 같은 곳 에 새겨놓은 "누구 다녀감 xxxx년 xx월 xx일"과 같은 낙서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나 목적이 없이 그냥 존재하는 증거였다.

 

 나는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는 것처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처럼, 그리고 청소부가 거리를 청소하는 것처럼 작업실에 앉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리며 단지 눈앞에 있는 것들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단지 그 순간이진실하기만을 바란다. 눈 앞에 있는 것 들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며 내가 무엇을 하고 살아가는지 스스로 질문한다. 회화의 작동 원리와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이해하고 분석해 나간 다. 회화는 매번 그 모습을 달리 했다. 때로는 납작한 평면으로, 때로는 환영적인 공간으로, 또 다른 날에는 어떠한 형상처럼 또는 하나의 추상처럼 보이기도 했다. 회 화는 언제나 그대로 였지만 내가 알고 있는 회화에 대한 규칙과 관습들이 오히려 회화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었다. 어떤 생각과 견해, 그리고 프레임들이 오히려 눈 앞 에 있는 것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못한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 앞에 있는 회화가 회화 그 자체로 존립하고 보여지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회화를 규정하는 것들을 걷어내기 위해 실험하고 있다. 상반되는 회화의 이분법적인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동시에 공존시킴으로써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눈앞에 있는 회화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것의 규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규정들이 지워지도록 요구하는 회화는 어떠한 규정도 없는 그 자체여야 하는 까닭에 무분별한 물음 속에 대답의 불가능성에 놓이고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나의 회화는앞뒤가 맞지 않는다. 평면이자 공간이며, 물질이자 이미지 이다. 지극히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이성적이다. 실재이자 환영이다. 추상이며 구상이다.그것은 즉흥적이지만 철저하게 의도된 결과이다. 차갑지만 따뜻하며 새롭지만 새롭지 않다.모순되는 다양한 답안들의 총체는 오히려 그것을 영점으로 회귀시킨다. 지금, 여기, 이순간 눈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회화는 그 질문에 대한 시도 이다. 나의 회화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저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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