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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SEONG

RYU

두려움은 물감 상자의 일부

 

백기영(모두미술공간 운영부장)

 

류재성은 독일의 뒤셀도르프쿤스트 아카데미를 2021년에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가 졸업한 학교는 유럽 미술사 속에서 회화의 전통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형태로 구축시켜 온 대표적인 현장 중에 하나다. 19세기 낭만주의 풍경화에서 출발한 이 학교에는 전후 요셉 보이스(Joseph Beuys)와 백남준 같은 개념미술가가 ‘플럭서스 운동’의 무대로 삼았으며,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나 지그마 폴케(Sigmar Polke)와 같은 구(舊)동독에서 넘어온 작가들이 사진 회화나 대중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실험하기도 했다. 이 계보는 무엇보다 전통적 개념에서 “회화는 여전히 유효한 매체인가?”에 대한 거듭되는 질문과 전복을 통해 이어져 왔다. 그 극단적인 변화는 1980년대 초, ‘회화의 복귀’를 선언했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 Neue Wilde)가 등장하면서, 마르쿠스 뤼퍼르츠(Markus Lüpertz), 요르그 임멘도르프(Jörg Immendorff), A. R. 팽크(A. R. Penck) 같은 인물들을 통해 회화의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최근 이러한 야성적인 회화의 전통은 카타리나 그로쎄(Katherina Grosse)나 토마스 샤이비츠(Thomas Scheiwitz), 그리고 류재성의 스승이었던 허버트 브랜들(Herbert Brandl) 같은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허버트 브랜들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면서 즉흥적이고 과감한 작품을 그려낸 것으로 유명하다. 거친 붓질은 거대한 알프스의 산에서부터 연유한 것이며 순식간에 화면 위를 널뛰는 작가의 신체로부터 쏟아져 나온 해프닝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카테리나 그로쎄는 지난해 봄 아트 바젤의 전시장 외곽을 컬러풀한 색으로 마구 뿌려놓아 공간 전체를 회화의 한 장면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색채 분사 퍼포먼스이자, 슈퍼 그래픽의 뉴 페인팅(New Painting) 실험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하다. 이들은 기존의 회화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 공간적 상황과 신체적 행위로 자연스럽게 확대되며, 류재성의 작업은 이와 개념적 상관성을 탐색하는 지점에 있다.

 

대부분의 유명 예술학교가 그렇듯 미술사를 주름잡는 거장들이 교편을 잡은 미술대학의 학생들은 늘 스승의 그림자 밑에서 자라나고 죽기를 반복한다. 류재성도 교수들의 영향 아래 자신만의 화풍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자전적 술회가 담긴 작가노트를 통해 그런 동시적 흔적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회화를 ‘완성된 결과라기보다, 순간들이 축적되어 만들어진 물질적 장소’라고 했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의 스승 허버트 브랜들이 추구하는, 제스처와 물질성이 강하면서 동시에 특정 장소를 떠나지 않는 회화적 관념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카타리나 그로쎄가 말하는 “이미지는 언제나 하나의 덩어리, 동시성”이라는 생각은 류재성이 작업실 풍경과 추상 화면을 하나의 동시성이자 덩어리로 이해하는 것과 연결된다.

 

반면, 어떤 지점에서는 작가만의 특기할 만한 태도를 만날 수 있는데, 마치 시시포스가 돌을 굴려 산으로 올리지만, 다시 돌은 굴러떨어지고 그것을 반복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것처럼, 류재성은 그리고자 하는 것과 그려진 것 사이에서 끝없는 부조리한 회귀(回歸)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류재성의 그림에는 <과정(Work in Progress)>나, <의미 이전의 손>, <휘발하는 행위>와 같은 알 수 없는 제목이 붙어 있다. 알베르 카뮈가 대표작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란 인간의 요구와 세계의 불합리한 침묵의 대결이다.”라고 말했듯이 ‘부조리’란 인간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망과 세계의 침묵이 충돌할 때 발생하는 감정이다.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는 세계에 대해 인간은 끝없이 어떤 의미를 묻는다. 이것이 시시포스의 형벌이지만, 인간은 무의미와 함께, 부조리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진리다.

 

또 다른 측면에서 류재성의 그림은 이미지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살아 움직이며 끝없이 변한다. 매 순간 생성되는 새 그림이 이전의 자취를 덮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순간의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 그림은 언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가? 그림은 우로보로스(Ouroboros)의 뱀처럼 꼬리를 물고 있다. 이처럼 처음과 끝은 순환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매번 모습을 달리한다. 납작한 평면이었다가 환영적 공간이었다가 형상을 어렴풋이 띠다가 알 수 없는 추상 화면으로 달아난다. 작가는 이것이 회화에 대한 규칙과 관습 때문에 생겨난 일종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 때문에 그림을 그림답게 보지 못하게 된다고 말한다. 결국 류재성은 회화에 천착하고 있지만, 끝없이 회화를 부정한다. 지난 세기 ‘회화의 죽음’ 위에서 늘 새로운 회화가 부활했던 것처럼, 뒤셀도르프의 ‘New Painting’은 누가 더 과격하게 회화를 학살하는지 보여준다.

 

인류 역사에서 회화는 늘 환영을 해체하거나 환영을 구축하는 행위를 반복해 왔다. 결국 류재성이 매일같이 반복해서 그리는 바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는 행위가 다시 회화의 대상으로 뒤바뀌어 왔다. 회화는 스스로를 비추고 되돌아보는 자화상처럼 기능하는데, 이 자화상은 어떤 형상이나 감정을 재현하기보다 작업실에서 벌어지는 회화의 실제 행위, 그 자체를 그린다. 최근 독일의 ‘New Painting’의 유산이 그러하듯이 화면의 선과 덧칠된 자국들은 그리는 순간의 흔적과 망설임, 결정의 과정을 생생히 드러낸다. 이것은 회화라기보다는 퍼포먼스의 흔적에 가깝다. 그의 그림은 때로 너무 추상적이어서 물감이나 캔버스의 물질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가 하면, 때로는 너무 실제적이어서 화가의 작업실 바닥이나 도색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장의 한 벽면처럼 사실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기존의 회화는 어떤 방식으로 전복되었는가? 작품을 거꾸로 거는 방식으로 이미지의 재현을 거부했던 바젤리츠나 거친 붓질로 뭉개버리는 페인팅 기법의 뤼페르츠, 스프레이건으로 건물 전체를 분사해 버리는 카테리나 그로쎄를 보자. 그들이 회화의 형식이나 기법에서 기존의 회화를 뛰어넘거나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했다면, 류재성은 상반되는 회화의 이분법적인 요소들을 공존시킴으로써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늘 앞뒤가 맞지 않는 부조리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그림은 평면이자 공간이고 물질이자 이미지이며, 지극히 감각적이면서 동시에 이성적이다. 결국 그림은 실재이자 환영이며 추상이자 구상이 된다. 즉흥적인 행위로 보이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내린 고뇌의 산물이다. “빈 캔버스에서 산을 그리는 과정은 마치 시뮬레이션된 알프스 체험과 같다”라고 말했던 그의 스승 허버트 브랜들의 말처럼, 회화는 하나의 시뮬레이션이자 선(仙)에 가깝다.

 

카테리나 그로쎄는 쿤스트포럼(KUNSTFORUM)이 마련한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ich Obrist)와의 대화에서 “나는 꽃을 꽃으로 보지 않는다. 혼합된 것을 본다”라고 말하면서 회화에 대한 두려움·의심·실패는 아무것도 아니고 단지, “물감 상자의 일부”일 뿐이라고 했다. 결국 그녀에게 있어서 예측을 깨는 과정이 바로 회화의 생명력이다. 이는 류재성이 끝없이 계획과 해체 과정에서 우연이 개입하는 것을 기다리는 태도와 구체적인 이미지를 상정하기보다 과정 중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회화를 사건화하는 것과 연결된다. 물감이 의도와 달리 번지거나 바닥에서 튄 자국이나 붓질의 속도와 압력에 따라 생겨난 예기치 않은 패턴이야말로 회화의 본질이 된다. 이때 작품은 완성된 결론이 아니고 사건과 반응의 흔적이라는 열린 구조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회화는 끝내 멈추지 않는 사건의 연속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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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카테리나 그로쎄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대담에서 한 표현 인용. 카테리나 그로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의 대담, 「Keine Angst vor Malerei!」, 『Kunstforum International』, 제268호, 2023년 9월.'

2)류재성이 필자에게 공유한 작가노트

3) 작가노트

4) 작가노트

5)쿤스트 포럼 268호 『회화에 대해서 두려워 하지마!』, 카테리나 그로쎄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라리사 키콜의 대화,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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