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E-SEONG
RYU
Work in Progress (2025.04.05)
작업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출발한다.
내게 작업실은 단순한 창작의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감각이 응축되어 흐르는 장(場)이다. 매일의 사소한 반복 속에서 풍경은 조금씩 달라지고, 그 안에서 나 역시 달라진다. 익숙한 사물들이 놓여 있는 정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그 틈 사이로 드러나는 미세한 변화들—빛의 이동, 마르지 않은 물감의 표면, 공기의 농도—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장면으로 나를 부른다. 이처럼 작업실 풍경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변화하는 순간들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펼쳐지는 장면으로 그려진다.
나는 고정된 형상이나 완결된 이미지를 지향하지 않는다. 회화는 내가 다루는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감각이 머무는 방식이고, 시간을 직조하는 몸짓이다. 붓질은 형태를 만들기보다, 형태의 경계를 허물며 번지고, 색은 한 자리에 머무르기보다 스며들고 흘러내린다. 화면 위에 남겨지는 흔적들은 모두 하나의 결과가 아니라, 그 순간의 감각과 움직임이 지나간 자리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반복과 변화의 감각이 층을 이루며 내 작업에 스며든다. 회화는 멈춰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때마다 다르게 드러나는 관계 속에서 계속 다시 만들어지는 ‘사이’의 존재다. 나는 그 흐름 속에 나를 놓고, 회화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 되도록 한다.
완성이라는 개념조차 작업 안에서는 유예된다. 모든 것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생성되고, 다시 사라진다. 화면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며, 응고된 현재이자 다음 감각을 기다리는 여백이다.
내가 그리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사물도, 색도, 나 자신도 고정되지 않은 상태로, 그 관계 안에서만 드러난다. 나는 그 질문을 손끝으로 따라가며, 매 순간 회화를 다시 살아낸다.